[심층기획] 목포냐 순천이냐, 그사이 멈춘 전남 의료… 이제는 '건물'이 아니라 '체계'다

목포대·순천대 통합과 국립의대 입지 논쟁에 발목 잡힌 36년 숙원, 이제는 '입지 경쟁' 아닌 '전남 의료체계 재설계'로 답해야

전라남도 국립의과대학 유치 논의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전남은 지난 36년간 국립의대 신설을 숙원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최근 국립목포대학교와 국립순천대학교의 통합 논의가 의대와 대학병원 입지 문제에 가로막히면서, 도민 생명권 확보라는 본래 목적보다 지역 간 주도권 경쟁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통합 신청서에 대학본부 위치를 명확히 기재하라고 요구했고, 이에 따라 목포대와 순천대는 각각 의대 유치를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전남도는 대학본부와 의대를 분리 배치하는 절충안까지 검토했지만, 양 대학 모두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목포 의대 + 순천 대학병원’ 방식의 단계적 추진안도 거론됐지만, 순천대 측이 동부권 의료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반대하면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현재의 논의가 ‘누가 의대를 가질 것인가’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도민들이 체감하는 의료 현실은 훨씬 절박하다. 응급·중증환자는 여전히 광주나 수도권으로 이송되고 있으며, 섬과 산간 지역 주민들은 야간 진료와 분만, 소아 진료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전남의 의료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최고 수준의 고령화, 섬과 해안·산간 지역으로 분산된 생활권, 부족한 공공병원, 그리고 수련 후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전문의 유출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서남권과 동부권의 의료 수요는 성격이 다르다. 목포·해남·완도·진도 등 서남권은 도서지역 응급이송 체계와 해양 응급의료가 핵심 과제인 반면, 순천·광양·고흥·보성 등 동부권은 산업단지와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심뇌혈관 질환과 외상 의료 수요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한 곳만으로 전남 전체의 의료 공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사례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NOSM(Northern Ontario School of Medicine)은 특정 도시에 대규모 캠퍼스를 짓는 대신, 20여 개 지역 병원과 보건소를 연결한 분산형 의학교육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지역 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하고, 현지 의사들이 교수 역할을 맡는다. 그 결과 졸업생 상당수가 북부 의료취약지에 정착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광활한 지역과 낮은 인구밀도, 의료 접근성 문제라는 점에서 전남과 유사한 조건이다.

 

호주의 Rural Clinical School 역시 도시 의대와 농촌 병원을 연계해 학생들이 1~2년간 지역에서 임상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장학금과 정착 인센티브, 지역 근무 의무제를 함께 운영하며 의료 인력의 지역 정착을 유도한다. 영국도 NHS 개혁 과정에서 런던 중심 의학교육을 완화하기 위해 지역 병원 네트워크 기반의 분산형 교육체계를 확대했다. 공통점은 ‘의대를 어디 세우느냐’보다 ‘어디에서 수련하고 정착하게 만들 것이냐’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전남의대 설립과 의료체계 인포그래픽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제 전남도도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일 통합의대 모델에 매달리기보다, 목포와 순천이 공동으로 기초의학교육을 운영하고 동부권과 서부권 거점병원을 순환하며 임상교육을 실시하는 ‘전남 의과학 네트워크’ 구축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도·진도·신안 등 도서지역 공공의료기관을 교육망에 포함하고, 순천은 바이오·정밀의료 연구를, 목포는 해양·응급의학 연구를 특화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여기에 지역의사 장학제와 공공의료 의무복무제를 연계해 졸업생의 지역 정착률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대 입지 선정 기준의 투명한 공개다. 인구 규모와 의료 수요, 응급환자 접근 시간, 기존 의료 인프라, 교수 확보 가능성, 재정 지속가능성, 지역균형발전 효과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또한 전남도가 추진 중인 목포·순천 각각 500병상 규모 대학병원 계획도 현실성 검증이 필요하다. 수천억 원의 건립비와 막대한 운영비가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구체적인 재정 로드맵 없이 제시되는 청사진은 오히려 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대 설립에는 최소 8~10년이 걸린다. 그 사이에도 의료 공백은 계속된다. 권역응급의료센터 기능 강화, 닥터헬기 추가 배치, 공중보건의 제도 개편, 원격협진 확대, 지방의료원 전문의 파견제 상설화 등 당장 실행 가능한 공공의료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처럼 ‘목포냐 순천이냐’의 구도로 논의가 계속된다면, 최악의 경우 의대 신설 자체가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8학년도 개교 목표가 흔들릴 경우 정부의 의대 정원 배정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의대를 어느 도시에 둘 것인가가 아니라, 전남 어디에 살든 도민이 1시간 안에 필수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

 

목포대·순천대 통합과 연계해 추진 중인 전라남도 신규 국립의과대학은 지역 자존심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도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여야 한다. 이제는 속도전보다 데이터와 의료 수요에 기반한 전면 재검토와 도민 공론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의대 건물 하나를 유치하는 데 그칠 것인지, 아니면 전남 전체의 의료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만들 것인지, 그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작성 2026.07.21 21:47 수정 2026.07.2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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