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이네] 1. 마포의 아함

코로 읽는 아침 신문

묶인 개와 묶이지 않은 인간들

눈에 보이지 않는 줄

공원에 들어서면 냄새가 바뀐다.

흙냄새가 먼저 온다. 밤새 식은 흙냄새. 그다음 풀냄새.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밤사이 다녀간 개들의 흔적. 킁킁.

 

인간은 활자로 세상을 읽는다. 개는 냄새로 세상을 읽는다. 나는 매일 아침, 코로 신문을 읽는다. 인간들의 신문은 활자로 거짓말을 하지만, 우리의 신문은 냄새로 진실을 말한다.

 

오늘자 1면. 푸들 한 마리가 새벽 네 시에 다녀갔다. 암컷, 세 살쯤. 긴장한 상태. 2면. 시추 노견. 관절이 안 좋다. 걸음이 질질 끌린 흔적. 사회면. 길고양이 두 마리가 담장을 넘었다. 나는 10분째 신문을 읽는다.

 

"아함아, 천천히."

아빠가 줄을 당긴다. 나는 신문을 덮는다. 아쉽다.

 

인간들은 개가 땅 냄새를 맡으면 볼일 볼 준비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우리는 읽는 것이다. 누가 다녀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코 하나로 다 안다. 하지만 아빠는 신문 읽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빠는 빨리 싸고 오는 개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읽다가 적당히 끊는다. 아빠를 위해서. 좋아서가 아니라.

"멍."

 

저쪽에서 장군이 온다. 진돗개, 아홉 살. 할아버지와 함께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코스. 이 산책로의 고정 출연진이다.

"어서 오세요."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인사한다. 아빠는 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숙인다. 꾸벅.

"과장님, 오늘도 일찍 나오셨네."

"네, 아버님도요."

 

나는 장군과 인사를 나눈다. 코끝을 맞댄다. 킁킁킁. 3초 만에 정보가 교환된다. 장군의 기분은 보통. 아침밥은 먹음. 할아버지가 어젯밤에 기침을 세 번 했다는 것까지 안다. 코는 거짓말을 못 한다.

 

인간들은 개들이 만나면 반가워서 꼬리를 흔든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우리는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우리가 반가워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아이구, 얘들아." 하면서 간식을 꺼낸다. 그래서 장군과 나는 꼬리를 크게 흔든다. 붕붕. 할아버지를 위해서. 좋아서가 아니라. 간식은 좋아서다. 이건 인정한다.

 

"아함아, 가자."

조깅녀가 지나간다. 에어팟을 꽂고, 팔을 크게 흔들며. 쌕쌕. 나를 보더니 반대편으로 크게 돈다. 개를 무서워하는 눈이다.

"저기요! 개 좀 잘 잡으세요!"

아빠가 줄을 바짝 당긴다. 나는 가만히 앉는다. 나는 묶여 있다. 줄의 길이는 2미터. 조깅녀와 나의 거리는 5미터. 닿을 수 없는 거리다. 그래도 무서워한다.

조깅녀가 사라진 뒤, 아빠가 중얼거린다.

"아함이는 안 무서운 앤데."

"컹."

 

나는 무서운 개가 아니다. 나는 묶인 개다. 그런데 인간들은 묶인 개를 무서워하면서, 묶이지 않은 인간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길에서 어깨를 부딪치는 인간. 침을 뱉는 인간. 담배꽁초를 버리는 인간. 그 인간들은 줄이 없다. 줄이 없는 게 더 무섭다. 무서움의 기준이 거꾸로다.

 

아빠의 폰이 울린다. 부르르.

"여보세요. 어, 나야. …응, 그 라이더 건은 오늘 회의에서 정리할게."

라이더. 처음 듣는 단어다. 귀로 저장한다. 아빠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일하는 목소리다. 일하는 목소리는 아빠를 피곤하게 한다. 나는 그걸 안다.

통화가 끝났다. 아빠가 한숨을 쉰다. 푹.

나는 아빠 바짓가랑이에 코를 쿵 박는다. 아빠의 스트레스 냄새를 확인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1.2배다.

"고맙다, 아함아."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인간들은 개가 눈을 가늘게 뜨면 행복해서 그런 줄 안다. 아니다. 햇빛이 눈부셔서다. 하지만 아빠는 '행복한 아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눈을 더 가늘게 뜬다. 아빠를 위해서. 좋아서가 아니라. 손은 좋아서다. 이건 인정한다.

 

"컹!"

벤치의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며 말한다.

"개는 왜 묶고 다녀? 불쌍하게."

아저씨의 발밑에는 담배꽁초가 세 개. 방금 버린 것이다.

"멍멍!"

아빠가 내 입을 막는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저씨, 당신의 꽁초는 누가 치우나요. 나의 똥은 아빠가 치웁니다. 비닐봉투에 담아서. 바스락. 묶인 건 나지만, 뒷정리를 하는 것도 우리 쪽입니다. 묶이지 않은 당신은 뒷정리를 안 합니다.

 

아빠가 봉투를 꺼낸다. 바스락. 인간들의 규칙이다. 나는 이 규칙을 존중한다. 아빠가 좋아하니까. 좋아서가 아니라.

그런데 인간들은 왜 봉투 꺼내는 걸 창피해할까. 아빠도 처음엔 남들 볼까 봐 봉투를 숨겼다. 지금은 당당하다. 7년 차다. 창피한 건 치우는 손이 아니라, 안 치우는 손이다. 인간들은 거꾸로 창피해한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여섯 시 오십 분. 출근 냄새가 진해진다. 구두 냄새, 커피 냄새, 불안 냄새.

관리사무소 앞, 경비 아저씨가 빗자루를 들고 있다. 쓱싹쓱싹. 나를 보더니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낸다. 매일 같은 간식. 매일 같은 시간.

"아함아, 오늘도 수고한다."

'수고한다.' 아저씨는 나를 일하는 존재로 대한다. 나의 산책은 아빠의 출근만큼 진지하다. 신문을 읽고, 정보를 교환하고, 규칙을 지키는 일이다. 아저씨는 그걸 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좋아서.

 

벤치 뒤편, 노숙자 할아버지가 신문을 덮고 있다. 매일 같은 벤치. 나는 다가간다. 아빠가 줄을 늦춘다.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손에 밥 냄새가 난다. 어젯밤의 밥 냄새. 나는 이 손 냄새를 기억한다. 매일 기억한다. 언젠가 필요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왜인지는 모른다.

"아함아, 가자."

"멍."

 

집으로 돌아오는 길. 줄의 이쪽 끝엔 코가 있고, 저쪽 끝엔 액정이 있다. 아빠는 다시 폰을 본다. 나는 아빠를 본다.

 

묶인 건 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줄 없이 돌아다닌 건 인간들이었다. 줄 없는 입으로 소리를 지르고, 줄 없는 손으로 꽁초를 버렸다. 묶인 내가 규칙을 지키고, 묶이지 않은 인간들이 규칙을 어겼다. 줄을 찬 건 나인데, 줄에 묶인 건 인간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줄에.

 

개판이네, 정말.
 

 

 

최병석 칼럼니스트 기자 gomsam@varagi.kr
작성 2026.10.14 00:35 수정 2026.10.1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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