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인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그 사이에 머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딛고 살아가며, 다른 생명과 관계를 맺고, 마침내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 인간은 비로소 우주와 연결된다. ‘천코(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인간을 단순히 하나의 개체로 바라보지 않는다. 인간은 범우주적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존재이며, 그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가치가 바로 선이다. 선은 거창한 도덕적 구호가 아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 나눔과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만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된다면, 인간은 기술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설명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천코(善)’은 그 질문에 대해 다른 길을 제시한다. 인간의 미래는 더 강한 인간이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선한 인간이 되는 데 있다. 하늘은 모든 생명을 품고, 땅은 모든 생명을 받아들이며, 인간은 그 사이에서 사랑과 선을 행동으로 만들어 내는 존재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선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하나의 새로운 시선이다. 오늘의 인류는 과학과 기술을 통해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간에게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질문에 ‘천코(善)’는 인간의 ‘선’에 대한 자각과 성찰을 담고 있다.
책 속으로
사람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것 이상으로 정직하고 진실할 수 없다면 나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억지를 쓸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그 더욱 그렇지 않은가. 우선 나 자신부터 그 누구를 억지로 좋아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사람보고 날 좋아해 달라고 억지를 부릴 수 있겠는가. 누굴 좋아하는 게 내 자유라면 다른 사람은 날 싫어할 자유가 있지 않겠는가.
-22쪽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과 생물을 창조한 조물주라면 어찌 인간만, 미국만, 백인만, 남성만, 부자만 축복해 주실 수 있을까? 기독교의 세 종파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은 하나같이 인본주의, 그것도 배타적인 선민사상의 독선 독단적인 교리에 입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파괴와 분열만 조장하는 서양사상이 카오스를 초래한다면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인 인간중심이 아니고 자연중심의 상생과 조화의 자본주의自本主義의 상생과 조화의 동양사상은 본래의 코스모스를 꽃 피운다고 해야 하리라.
-140쪽
내세가 있든 없든 간에 사랑을 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산 사람은 평안히 최후를 맞겠지만 남을 미워하고 못 할 짓을 한 사람일수록 비참한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가 보다. 하지만 어떻든 잘살든 못살든 둘 다 좋은 길잡이가 되지 않던가. 좋은 본을 보이는 교사나 아니면 나쁜 본을 보이는 반면교사로 말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사랑이란 무지개를 타고 지구별에 잠시 들린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이란 정체성을 자각하고, 이 한없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축복을 감사히 받아, 사랑으로 충만한 지로역정地路歷程을 마칠 때 우린 또한 천로 역정天路歷程에 오르게 되는 것이리.
-240쪽






